서도현이 팀원 면담을 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서도현이었다.
민서가 가능한 시간에는 도현의 주간 보고가 있었다. 지후가 비는 시간에는 요구사항 문서 검토가, 수경이 비는 시간에는 도현이 이름만 넘겨받은 회의가 잡혀 있었다.
박준은 아무 때나 괜찮다고 했다가 초대장을 보내자 그때는 고객 통화가 있다고 했다.
그사이 팀 메신저에서는 점심 메뉴가 정해졌다.
백반 네 표. 돈가스 한 표.
다섯 명이 뭘 먹을지는 삼 분 만에 정했는데, 십 분씩 얼굴을 볼 시간은 이십 분째 못 정하고 있었다.
“면담이면 평가 같은 것도 하시는 거예요?”
지후가 모니터 위로 눈을 내밀었다.
“아뇨. 업무 현황만 확인하려고요.”
“그럼 제 건 지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승인 대기요.”
어제 올린 디자인 도구 결재였다.
도현이 링크를 열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어제와 똑같았다.
“이건 다시 확인할게요.”
“네. 제 업무 현황도 그대로네요.”
도현은 창을 닫고 자신의 요구사항 문서 검토를 오후로 옮겼다. 거기에 있던 보고서 작업은 다시 뒤로 밀렸다.
일단 자리는 났다. 일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는 면담 초대장에 ‘진행 업무, 완료 예정일, 필요한 결정’을 적었다. 이 세 가지만 확인하면 됐다. 각자 맡은 걸 모아 빈 부분만 메우면 다음 주 시연 정도는 정리할 수 있었다.
개인 휴대전화에 캘린더 알림이 떠 있었다.
네모랩 면접. 다음 주 금요일 오후 두 시.
도현은 화면을 엎었다.
변경 요청은 준비 현황부터 보고 하자. 그쪽도 가능한 시간을 물을 테니까.
“민서 씨, 지금 잠깐 될까요?”
민서는 헤드폰을 벗고 자기 옆 빈 의자를 당겼다.
“여기서 보시죠. 화면 띄워 놨어요.”
화면에는 매장 이름과 인수인계 목록이 있었다. 냉장고 문 닫힘 확인, 납품 수량 재확인. 꾸밈없는 네모 안에 짧은 문장이 들어갔다.
“지금 어디까지 되는 거예요?”
“내용 등록하고 목록에서 보는 것까지요. 확인 기록은 붙이는 중이고요.”
“어제 범위 결정은요?”
“세 시까지 답이 없어서 기존 범위로 진행했어요. 추가 요청은 빼고요.”
도현은 노트에 펜을 댔다가 멈췄다.
어제 그는 확인하겠다고만 했다. 민서는 그 말을 개발 범위가 정해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가 답을 못 드렸네요.”
“오늘 추가하시면 완료 날짜 다시 잡아야 해요.”
민서가 작업 중인 화면을 눌렀다. 인수인계 항목 옆에 작은 확인 버튼이 있었다.
도현은 어제 본 발표 자료를 떠올렸다.
“미확인 건이 관리자 화면에 자동으로 모이는 건요?”
“어떤 관리자 화면이요?”
“매장별로 색깔 바뀌는 거요. 초록, 노랑, 빨강.”
민서가 손을 마우스에서 뗐다.
“저는 그걸 받은 적이 없는데요.”
도현은 공유 폴더에서 그림을 찾아 열었다. 민서는 잠깐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 화면에 들어갈 집계도 없어요.”
“목록에 데이터는 있잖아요.”
“어느 시간까지 확인 안 하면 노란색인지 정해진 게 없어요. 다음 근무자가 아직 출근 안 했어도 미확인인데요.”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쓰던 정의서에도 그 기준은 없었다. 색깔 세 개가 붙으려면 결정할 일이 세 개보다 많았다.
“그럼 시연 가능한 건 인수인계 등록하고 확인하는 흐름까지죠?”
“기존 범위가 유지되면요.”
민서는 마지막 말을 또렷하게 했다.
도현은 ‘유지’에 밑줄을 그었다.
지후는 작은 회의실 벽에 관리자 대시보드를 띄웠다.
아까 민서가 처음 봤다고 한 화면이었다. 큰 숫자 아래 매장 카드가 줄지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확인이 필요한 일이 보기 좋게 모여 있었다.
“시연 때는 여기서 시작하면 돼요.”
지후가 카드를 눌렀다. 매장별 상세 화면으로 넘어갔다.
도현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거 연결된 거예요?”
“화면끼리요.”
“실제 데이터는요?”
“아직요.”
지후가 마우스를 두 번 더 눌렀다. 어떤 매장에 들어가도 미확인 건수는 일곱이었다.
“새로고침해도 일곱이겠네요.”
“성실하게 일곱이죠.”
도현은 웃지 못하고 자신의 노트를 봤다.
“민서 씨는 이 화면 작업 모르던데요.”
“관리자용 화면 먼저 보여 달라고 해서 그쪽부터 잡았어요. 매장 세부 기준은 기획에서 확정되면 붙인다고 들었고요.”
기획.
도현의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
“저한테 요청 온 건 없었는데.”
“저도 대리님이 따로 정리 중인 줄 알았어요. 지난번 보고 때 화면 들어갔잖아요.”
지후는 디자인 파일 옆에 달린 의견을 열었다. 관리자 시야를 강조해 달라는 요청, 첫 화면에 전체 현황을 보여 달라는 요청. 수정한 날짜가 차례로 남아 있었다.
놀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서로 다른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문이 두 번 울렸다. 수경이 휴대전화를 들고 서 있었다.
“두 분 끝나면 저도 잠깐 가능할까요?”
도현이 노트북을 옆으로 밀었다.
“들어오세요. 지금 괜찮아요.”
수경은 앉기 전에 문부터 닫았다.
“어제 한 시 반까지 주시기로 한 답, 못 받았어요.”
“참석 대상이요.”
“네. 혜진 매니저님께 안내가 또 늦었어요. 오늘도 기다려 달라고는 못 하겠어서요.”
도현은 설명하려던 입을 멈췄다. 자료가 여러 개였고, 확인할 사람이 없었고, 오후에는 다른 일이 있었다.
수경에게 넘길 이유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늦는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수경이 잠금이 풀린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오늘은 정할 수 있을까요?”
도현은 벽에 뜬 대시보드와 자신의 노트를 번갈아 봤다.
매장 관리자들을 모두 불러 놓고 일곱에서 바뀌지 않는 숫자를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이번엔 혜진 매니저님하고 인수인계 업무를 아는 실무 담당자 한 분 정도로 제안해 주세요. 관리자 전체 참석은 요청하지 말고요. 기본 흐름을 확인하는 자리로요.”
“그렇게 보내겠습니다.”
수경이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작은 결정 하나에 누군가의 손이 바로 움직였다. 도현은 이상하게도 그게 조금 무서웠다.
“수경 씨가 보시기엔 꼭 보여 줘야 하는 게 뭐예요?”
“다음 근무자가 내용을 확인했는지요.”
“확인 버튼은 개발 중이라고 들었어요.”
“버튼이 있다는 말 말고요. 저 기록을 보고 매장에서 따로 확인 전화를 안 해도 되는지요.”
수경이 이전 문의를 찾아 화면을 돌렸다.
인수인계장에 적었는데 다음 근무자가 못 봤다는 일이 반복돼서요.
그 아래에는 새 도구를 쓰면 같은 내용을 따로 옮겨 적어야 하는지 묻는 문장이 있었다.
고객은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준 씨도 불러서 전달된 자료 같이 보죠.”
도현이 말했다.
십 분씩 끝내려던 면담은 점심 메뉴 투표보다 훨씬 큰 일이 되어 있었다.
박준은 노트북을 들고 들어오면서 먼저 사과했다.
“어제 자료 확인 늦어서 죄송합니다. 보낸 메일 기준으로 찾느라요.”
그가 연 파일에는 AI 통합 매장 운영 플랫폼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도현은 자기 자리에서 민서도 불렀다. 민서는 회의실 시계를 보고 들어왔다.
“얼마나 걸려요?”
“십오 분만요.”
다섯 명이 앉자 작은 테이블이 꽉 찼다.
박준은 고객에게 보낸 메일과 첨부 파일을 나란히 열었다.
“본사에서 여러 매장을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드렸어요. 인수인계랑 현황을 같이 보시는 걸로요.”
“AI는 어떻게 설명했어요?”
“자동으로 정리해서 보여 주는 방향이라고요. 이 부분 말씀드릴 때 반응이 좋으셨어요.”
수경이 메일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다음 질문도 봐 주세요.”
박준이 화면을 내렸다.
좋습니다. 다만 우선 확인하고 싶은 것은 교대 시 전달 사항이 빠지지 않는지입니다.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좋다고 하셔서 전체 방향도 괜찮으신 줄 알았습니다.”
박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도현은 ‘좋습니다’ 뒤의 마침표를 봤다. 박준이 어디까지 읽고 안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도 상무가 ‘실무는 알아서’라고 했을 때 필요한 권한이 생긴 줄 알았다.
“다음부터는 뒤에 붙은 조건도 같이 올려 주세요.”
“네.”
도현은 임원 보고용 파일을 열었다.
고객에게 보낸 것보다 두 장이 더 있었다. 지후의 대시보드 위에 화살표가 붙고, 그 끝에 ‘매장별 위험 예측 및 선제 대응’이라는 문장이 생겨 있었다.
지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화살표는 제가 안 그렸는데.”
“위험 예측은 지금 없는 거죠?”
도현의 질문에 민서가 바로 답했다.
“없어요. 개발 범위에도 없고요.”
등록과 확인을 만드는 사람, 관리자 화면을 만드는 사람, 확인 기록을 믿고 고객을 지원해야 하는 사람, 통합 관리를 설명한 사람.
그리고 위험을 미리 알아낸다는 보고서.
도현은 자신의 정의서를 열었다. 제목 아래에는 ‘매장 교대 시 인수인계 누락 방지’라고 적혀 있었다.
자기가 쓴 문장만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이렇게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걸 아무도 몰랐어요?”
말이 나온 뒤에야 도현은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민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범위 밖 화면이 있는 건 알았어요. 언제 만들지는 정해진 적 없었고요.”
“저도 실제 연결 전이라는 건 계속 말씀드렸어요.”
지후가 덧붙였다. 수경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고객 질문이 자료랑 다른 것도 전달했고요.”
도현은 박준을 봤다. 박준은 화면 한쪽의 댓글을 가리켰다.
시연 범위 최종 확인 필요.
작성자는 도현이었다. 열흘 전 날짜였다.
그는 댓글을 달았고, 그 아래 자기 할 일을 계속했다.
누군가 전체를 맞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제가 질문을 잘못했네요.”
도현은 파일 제목 뒤의 최종이라는 글자를 지웠다.
“고객한테 필요한 흐름하고 지금 되는 기능부터 맞출게요. 이 자료는 제가 상무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백반집에 들어갔을 때는 테이블이 하나만 남아 있었다.
도현은 주문을 기다리며 발표 자료를 스물여덟 장에서 열한 장으로 줄였다. 위험 예측을 빼고, 자동 집계를 빼고, 연결되지 않은 화면을 뒤로 옮겼다.
휴대전화 화면에서는 삭제가 쉬웠다.
최상무의 방에서는 세 번째 장도 넘기지 못했다.
“이렇게 빼면 뭘 보여 줘?”
상무가 인쇄물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실제로 동작하는 인수인계 기능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고객 문의도 그쪽이고요.”
“인수인계 적고 확인하는 건 다른 데도 해. 그래서 본사에서 한눈에 보는 걸 앞에 둔 거잖아.”
“대시보드는 아직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화면은 있지?”
“화면만 있습니다.”
상무가 손으로 눈두덩을 눌렀다. 옆에는 분기 신규사업 실적표가 펼쳐져 있었다. 유료 고객 칸에는 숫자 대신 예상 날짜가 적혀 있었다.
“서 대리, 내가 그 화면을 지난주 임원 회의에서 보여 줬어. 새봄에도 통합 관리 방향이라고 설명했고. 지금 와서 목록 하나 보여 주면 준비 안 된 걸로 보잖아.”
“안 되는 기능을 되는 것처럼 보여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야. 완성품 납품이 아니라 시연이잖아. 최종적으로 어떻게 쓸지 보여 줘야지.”
상무가 삭제된 대시보드 장을 찾아 다시 맨 앞으로 옮겼다.
종이 한 장이 돌아오자 도현이 지운 일들도 함께 돌아왔다.
“예측 문구는 개발 예정이라고 표시하겠습니다. 그래도 시연 범위에서는 빼야 합니다.”
“좋아. 그건 뒤로 빼. 대신 전체 현황 화면은 살려. 그게 있어야 본사 담당자가 볼 이유가 있지.”
“집계 기준하고 데이터 준비를 맡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걸 정리하라고 총괄 맡긴 거잖아.”
도현은 노트에 적힌 담당자 빈칸을 봤다.
다시 개발해 달라고 하면 날짜가 바뀐다. 화면을 버리자고 하면 이 대화가 처음부터 돌아간다. 누군가 자료를 모아 숫자를 맞추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만 정하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상무가 펜을 놓았다.
“그래. 어떻게든 보여 줄 방법은 있겠지.”
도현은 빈칸 옆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수동으로 준비해서라도 시연은 맞추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방법보다 약속이 먼저 생겼다.
자리로 돌아온 도현은 민서에게 수정한 자료를 보여 줬다.
민서는 전체 현황 화면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이건 자동으로 안 돼요.”
“네. 들었어요.”
“등록한 내용이 여기 바로 나타나지도 않고요. 매장별 건수 계산도 없어요.”
“시연 데이터는 미리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민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도현은 그 침묵을 가능성을 찾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말을 이었다.
“등록하고 확인하는 건 실제 기능으로 하고, 전체 현황은 그 데이터에 맞춰 사람이 준비하는 거예요. 시연 전까지만요.”
“중간에 항목 하나 더 넣으면요?”
“순서를 정해 두면.”
“고객이 다른 매장 눌러 보면요?”
도현의 펜이 멎었다.
민서는 화면을 닫지 않고 기다렸다. 해 주겠다는 말도, 불가능하다는 말도 대신 해 주지 않았다.
“그 경우까지 제가 정리할게요.”
도현이 말했다.
“민서 씨는 기존 범위대로 진행해 주세요.”
“네. 추가 자동 처리는 일정에 안 넣겠습니다.”
그 문장이 노트에 남았다. 도현은 읽고도 지우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지후가 의자를 돌렸다.
“그럼 이 화면은 시연용으로 따로 만들어야겠네요. 진짜 연결된 화면이랑 섞이면 저도 헷갈려요.”
“필요한 수정 먼저 적어 주세요. 보고 정할게요.”
수경은 고객 문의 창을 닫으며 물었다.
“수동으로 준비한 부분은 고객에게도 안내하시는 거죠?”
“네. 어디까지인지 구분해서요.”
도현은 답하고 표에 칸을 하나 더 만들었다. 고객 안내 문구. 그 옆에도 자기 이름을 넣었다.
수경이 보낸 참석 대상 제안에는 회신이 와 있었다. 내부 실무 담당자를 확인해 알려 주겠다는 답이었다.
오늘 결정한 것 중 적어도 하나는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현은 그 메일을 접고 시연 준비표를 채웠다.
집계 기준 정리, 시연 데이터 취합, 화면 전환 순서, 고객 안내 문구.
빈 담당자 칸에 서도현이 들어갔다. 같은 이름을 네 번 쓰자 표가 제법 안정적으로 보였다.
지후가 지나가다 화면을 봤다.
“팀장님 혼자 발표하면서 이것도 다 하세요?”
“일단 제 이름으로 넣어 둔 거예요. 정리한 다음 나누려고요.”
어제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았다.
도현은 그 생각을 밀어내고 시연 준비 회의 초대장을 보냈다. 이번에는 자기 일정부터 비웠다. 밀려난 문서 검토는 퇴근 직전으로 갔다.
전송 알림이 뜬 뒤 개인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네모랩 면접 일정은 그대로였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두 시. 조금 전까지 자기 이름을 채운 시연도 오후 두 시였다.
도현은 일정 변경 메일을 열었다가 받는 사람을 넣지 못한 채 멈췄다.
둘 중 하나는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방금, 움직일 수 없는 쪽에 자기 이름을 네 번 더 써넣었다.
2화 끝 · 다음화로 작성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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